발표 전날 밤이었다. 어깨가 뻐근한 게 벌써 두 시간째 빈 슬라이드만 열어놓고 있었던 거다. AI로 발표자료 만들기, 프롬프트 한 줄이면 된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이번엔 진짜 그렇게 해보자 싶었다. 주제 한 줄 넣고, 엔터. 몇십 초 만에 슬라이드가 좌라락 깔렸다. 오 이거 되네, 싶었는데.
그 “오”가 딱 삼 분짜리였다.
프롬프트 한 줄로 나오는 건 어디까지였나
되긴 됐다. 이건 인정해야 한다. 슬라이드 순서, 제목, 불릿 초안, 심지어 발표할 때 읽을 노트까지 몇 분 안에 나왔다. 백지 앞에서 커서만 깜빡이던 그 막막함, 그게 사라진 것만으로도 값어치는 했다.
내가 쓴 조합은 흔한 방식이었다. 개요는 ChatGPT한테 맡기고, 그걸 슬라이드로 입히는 건 Gamma에 붙여넣는 식. 슬라이드 자동 생성 도구들은 대체로 두 부류더라. 텍스트랑 개요를 뽑아주는 쪽(ChatGPT)이 하나고, 프롬프트를 넣으면 디자인까지 만들어주는 쪽(Gamma, Canva, 파워포인트 Copilot)이 다른 하나. 실전에선 앞엣것으로 뼈대 잡고 뒤엣것으로 옷 입히는 게 자연스럽게 손에 붙었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로 배운 게 있다. 디자인부터 뽑으면 안 된다는 것. 슬라이드는 예쁜데 앞뒤 논리가 안 맞아서, 자꾸 덱 전체를 다시 생성하게 되는 거다. 2026년에 정리된 모범 순서를 보면, 디자인을 요청하기 전에 개요(서사)부터 승인하라고 짚는다. 진짜 문제는 ‘주장의 흐름’인데 그걸 놔두고 겉모습만 계속 다시 만드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거다. 나도 딱 그랬다. 세 번째 재생성쯤에서야 “아, 내가 지금 순서가 틀린 걸 디자인으로 덮으려 했구나” 싶었다.

예쁜 슬라이드 속 숫자가 다 거짓말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슬라이드에 통계가 착착 박혀 있는데, 이게 너무 그럴듯한 거다. 실제 기관 이름에 구체적인 퍼센트까지 붙어 있으니까.
찾아보다가 손이 멈췄다. AI 발표 도구 여섯 개를 같은 주제로 돌려서 팩트체크한 실험이 있었는데, 그 결과를 보면 정확도 50%를 넘긴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검증된 주장이 절반도 안 됐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내가 방금 감탄한 그 숫자들, 절반 넘게 틀렸거나 확인 불가라는 거다.
구체적인 사례가 더 서늘했다. Canva는 실존하는 기관 이름을 대면서 근거 없는 통계를 붙였다더라. 실제 기관에 가짜 수치가 붙으면, 일부러 대조하기 전엔 잡아낼 방법이 없다. Beautiful.ai는 시장 규모를 실제의 두 배 넘게 부풀렸고, Gamma는 교사의 AI 도구 채택률을 실제 약 60%인데 83%로 올려 적었다. “시험 점수 54% 상승” 같은, 출처를 추적할 수 없는 좀비 통계가 여러 도구에 걸쳐 똑같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게 할루시네이션의 무서운 점이었다. 틀린 걸 어눌하게 말하면 차라리 걸러낸다. 그런데 AI는 틀린 걸 완성되고 유창하게, 자신 있게 말한다. 그래서 눈으로만 보면 안 걸린다. 여섯 개 중에 출처를 붙여준 도구는 딱 하나뿐이었다.

한글 폰트가 깨지고, 내보내니 납작해졌다
숫자만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엔 화면 밖으로 자료를 꺼내는 데서 막혔다.
Gamma에서 만든 걸 PPT로 내보냈더니, 무료 플랜이라 “Made with Gamma” 워터마크가 박혀 나왔다. 그것도 그렇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화면 안에서 움직이게 짜여 있던 구성이 통째로 납작한 그림 한 장으로 눌려버려서, 파워포인트에서 글자 하나 못 고치게 된 거다. 편집하려고 내보냈는데 편집이 안 되는 상황. 폰트도 그렇다. 파워포인트에서 같은 폰트로 보이려면 그 폰트가 내 PC에 깔려 있어야 정상 표시된다. 안 그러면 한글이 어색하게 밀리거나 깨진다.
감마의 한글 실력도 아직은 완벽하진 않았다. 생성이 좀 느리고 문장이 살짝 번역투로 어색하게 나오는 게 있더라. 예쁘긴 예쁜데, 자세히 읽으면 알맹이가 얕은 문장들. 결국 중요한 발표일수록 색상·폰트·문장을 내가 직접 손대야 “AI가 뽑은 자료” 티가 지워졌다.
무료로 어디까지 되나도 대충 짚어두면, 2026년 7월 기준으로 공개 자료랑 공식 문서를 대조해봤을 때 이렇다. ChatGPT 무료로 개요랑 발표 노트 뽑는 게 제일 실속 있고, 여기에 Gamma 무료나 Canva Magic Design 무료를 붙이는 조합이 돈 안 들이는 최선이었다. 다만 Gamma 무료는 크레딧 총량이 정해져 있고 슬라이드 장수·워터마크 제약이 있어서 — 요금이나 크레딧 수치는 매체마다 조금씩 갈려서 여기선 단정 안 하겠다 — 사내 정식 발표엔 유료가 현실적이더라. 파워포인트 Copilot은 아예 무료가 없고 마이크로소프트 365 구독이 있어야 켜진다.
결국 내가 정한 순서
두 번 손보고 나서 순서가 잡혔다. AI한테 개요부터 시키고, 그 논리 흐름을 내가 먼저 통과시킨다. 그 다음에야 디자인 도구에 붙여넣는다. 이 순서가 핵심이었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개요 질이 확 달라지는데, 이건 AI가 엉뚱한 답을 낼 때 프롬프트 고치던 순서에서 붙잡은 감각이 그대로 먹혔다. 청중이 누군지, 목적이 설득인지 보고인지, 슬라이드 몇 장인지를 프롬프트에 미리 다 넣으면 결과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그리고 숫자는 하나도 안 믿기로 했다. 슬라이드에 박힌 통계·날짜·인용은 전부 내가 원출처를 찾아 대조한다. 마이크로소프트조차 공식 문서에서 “생성 결과는 AI 콘텐츠이므로 사람이 검토·편집해야 한다”고 대놓고 안내한다. 만든 쪽에서 그렇게 말할 정도면 검증은 선택이 아닌 거다.
여기서 생각이 한 번 뒤집혔다. 처음엔 “AI가 발표자료를 다 만들어준다”고 여겼는데, 며칠 붙잡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AI는 백지를 없애주고 초안 속도를 벌어주는 도구지, 판단을 대신해주진 않는다. 도입의 훅, 마지막 마무리, 청중 마음을 움직이는 그 온도는 결국 내가 넣어야 했다.
발표는 무사히 끝냈다. 다만 그날 이후로 AI가 뽑아준 첫 화면을 볼 때마다, 손끝이 먼저 조심스러워진다. 예쁘게 나올수록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그 미묘한 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