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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여행 일정, 다 짜준다길래 시켰다가 절반은 내가 손봤다

오늘의 AI

“그거 요즘 AI가 다 짜준다며.” 친구가 여름휴가 얘기하다 툭 던진 말이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AI 여행 일정, 목적지랑 날짜만 넣으면 알아서 나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며칠 사이에 챗GPT랑 제미나이한테 몇 번 시켜봤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 짜주긴 하는데, 그 ‘다’가 문제였다. 있지도 않은 곳, 문 닫은 곳, 걸어서 10분이라던 게 실제로는 40분인 곳까지 다 짜준다. 그러니까 AI가 여행 초안은 기막히게 뽑는데, 그걸 그대로 들고 나가면 낭패라는 거. 시켜보고 나서야 어디를 믿고 어디를 내가 손봐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뼈대 뽑는 건 진짜 몇 분이면 끝나더라

일단 초안 뽑는 속도는 놀랍다. “3박 4일, 성인 둘, 대중교통 위주, 너무 빡빡하지 않게”라고만 넣었는데 날짜별로 동선이 쭉 나온다. 관광지, 근처 밥집, 이동 순서에 예산 대충까지. 예전에 여행 카페 뒤지고 지도 켜놓고 반나절 걸리던 걸 몇 분에 초안으로 받아본 셈이다. 웹기획자로 일할 때 요구사항 정의서 쓰던 습관이 여기서 그대로 먹혔다. 조건을 조목조목 적을수록 결과가 확 좋아진다.

실제로 여행픽 같은 후기들을 대조해보니, AI 일정의 가장 큰 이점은 결국 시간 절약과 맞춤 초안이라고 짚는다. 취향·예산·인원을 반영한 뼈대를 만들고, “관광지 하나 더 넣어줘”, “쉬는 시간 좀 넣어줘” 같은 후속 요청에 유연하게 동선을 다시 짜준다. 이 대화형 수정이 생각보다 잘 됐다. 처음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틈없이 채워서 주길래 “하루 3곳 이하로, 이동 30분 안쪽으로 묶어줘” 했더니 훨씬 사람 다닐 만한 일정으로 바뀌더라.

도구마다 성격이 좀 갈렸다. 챗GPT는 이야기 흐름이 있는 초안, 뼈대 잡는 데 강하고, 표로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제미나이는 구글 지도랑 붙어 있어서 영업시간이나 위치 같은 실용 정보가 더 촘촘하게 나온다. 한 곳만 붙잡기보다 뼈대는 챗GPT, 실제 정보 확인은 제미나이 식으로 나눠 쓰니 헛걸음이 줄었다.

AI가 뽑아준 하루 여행 동선 초안

있지도 않은 곳을 데려다 놓을 때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뼈대는 믿어도 세부는 못 믿는다.

한 검증 매체(travelanywhere.blog)가 베를린·런던 2일 일정을 여러 번 시켜본 실험을 정리해뒀는데, 90% 경우에 오류가 최소 하나씩 들어 있었다고 한다. 문 닫은 곳, 존재한 적 없는 곳, 설명대로는 갈 수 없는 곳. 읽으면서 뜨끔했다. 내가 받은 일정도 대충 훑을 땐 멀쩡해 보였으니까. 런던에서 챗GPT가 추천한 카페 하나는 이미 2020년에 문 닫고 지금은 나이트클럽이 된 자리였다더라. 심지어 말레이시아에선 한 노부부가 AI 영상 속 케이블카를 타러 300km를 갔는데, 그 명소가 실제로는 없었다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게 왜 이러냐면, AI가 영업시간이나 거리를 진짜 값이 아니라 “그 업종이 보통 이렇겠거니” 하는 패턴으로 지어내기 때문이다. 도보·대중교통 이동 시간을 30~50%씩 틀리게 잡거나, 예약을 안 받는 곳을 예약하라고 하기도 한다. 가격은 더 심하다. 브라우징을 안 켜면 학습해둔 옛날 값을 말하는데, 실제 요금보다 15~20%까지 낮게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위 매체가 500개 사실 질의로 모델별 환각률을 재보니 클로드가 제일 낮고 제미나이가 조금 높게 나왔는데, 흥미로운 건 제미나이는 구글 검색이랑 붙어 있어서 ‘최신 정보가 필요한 답’에선 오히려 가장 강했다는 점이다. 환각률과 최신성 강점은 별개라는 얘기.

주의할 게 있다. 위 폐업·환각 사례는 다 해외 도시 이야기다. 국내에서 내가 똑같이 당했다는 게 아니라, 원리가 같으니 국내 여행도 방심하지 말자는 쪽으로 읽는 게 맞다. 어쨌거나 결론은 하나다. 식당·호텔·항공은 어떤 모델이든 단독으로 믿지 말 것.

지도로 여행 일정 위치 재확인하기

그래서 나는 지도부터 켠다

시켜보고 나서 생긴 내 순서는 이렇다. 일정을 받으면 바로 예약창으로 가지 않고, 먼저 구글 지도에 장소를 하나씩 찍어본다. 이걸 알려준 건 mind-treks.com의 검증 워크플로였는데, 말로만 있던 계획을 지도 위 핀으로 옮기면 그 핀들이 한 동네에 뭉쳐 있는지 도시 전체로 흩어졌는지가 눈에 딱 들어온다. 현실적인 하루는 보통 한 지역에 뭉친 한 덩어리다. 핀이 지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으면 그날 일정은 손봐야 한다는 신호다.

그다음 하루씩 경로 시간을 실제로 재본다. 도보·대중교통 모드 바꿔가며. 지도상 가까워 보여도 언덕이나 환승 때문에 실제로는 안 가까운 경우가 있어서, 이건 눈대중으로 넘기면 안 되더라. 문제를 찾으면 그 제약을 다시 AI한테 넣는다. 이때 “느긋한 일정으로” 같은 테마 말고 “이 동네 안에서만, 하루 3곳, 사이에 버퍼 넣어서” 처럼 지리적 경계로 못 박아 요청하는 게 훨씬 잘 먹혔다.

영업시간·휴무·공사 여부는 AI 말고 공식 홈페이지나 지도 앱에서 확정한다. 최신 데이터를 참고했더라도 현지 사정으로 갑자기 문 닫는 일이 있으니까. 예약이랑 결제는 당연히 내가 직접 한다. 프롬프트에 여권번호나 카드정보 같은 건 넣지 않는 게 기본이고. AI한테 초안 짤 때 무료로 어디까지 되나 궁금하면, 예전에 정리해둔 챗GPT 무료·유료 차이 글이 참고가 될 거다.

결국 AI는 여행 초안 작가지 여행사 직원이 아니었다. 뼈대랑 동선 아이디어는 맡기고, 있는지 없는지·문 여는지·얼마인지는 내가 확인하는 것. 이걸 나누고 나니 AI 일정이 훨씬 쓸 만해졌다.

친구한테 결국 이렇게 말해줬다. 다 짜주는 건 맞는데, 그 절반은 네가 지도로 다시 봐야 한다고. 화면 가득 뽑혀 나온 일정표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건 진짜 갈 수 있는 길인지 아닌지 손끝이 먼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