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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일자리 대체, 의사 99%라는 숫자를 붙잡고 있다가 안 게 있다

오늘의 AI

99%. 뉴스에서 이 숫자를 보고 커피 마시다 멈칫했다. 의사가 AI로 대체 가능한 확률이 99%라는 거였다. AI 일자리 대체 이야기야 몇 년째 봐왔지만, 하필 의사라는 직업에 붙은 99%라는 숫자가 눈에 콱 박혔다. 그럼 나 같은 웹기획자는 몇 %라는 소리야. 계산기 두드릴 것도 없이 기분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이 숫자를 며칠 붙잡고 있다 보니, 저 뒤에 붙은 조건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99%라는 숫자에 붙어 있던 단서

처음엔 “의사도 99%면 웹기획 같은 건 진작 끝났겠네” 쪽으로 생각이 굴러갔다. 웹기획이라는 게 결국 자료 조사하고, 화면 정의서 쓰고, 회의록 정리하고, 문서 초안 뽑는 일이 큰 비중이니까. 그거 AI가 지금도 곧잘 하지 않나.

쓰고 보니 좀 다르다. 그 99%가 무슨 뜻인지부터 내가 잘못 읽고 있었다. 한국은행이 IMF와 함께 낸 「AI와 한국경제」 보고서를 보면, 의사·한의사의 AI 대체 가능성이 99%로 전 직종 최고인 건 맞다. 회계사 81%, 판·검·변호사 79%로 뒤를 잇는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가 바로 그 옆에 이렇게 덧붙여 놨다. 의사나 판사처럼 오류가 나면 사람 목숨이나 인생이 걸리는 일은, 기술적으로 대체가 가능해도 사회적으로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니까 저 99%는 “의사가 99% 사라진다”가 아니라 “의사 업무의 99%가 기술적으로는 AI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다”라는 노출도(exposure)였다. 노출도랑 실제 대체는 다른 말이더라. 이걸 헷갈리면 헤드라인만 보고 지레 겁먹게 된다. 나처럼.

AI 노출도와 실제 대체의 차이

진짜로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숫자의 뜻을 다시 보고 나니, 그럼 예측 말고 실제로 벌어진 일은 뭔지가 궁금해졌다. 여기서 데이터가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은 담담하다. OECD 고용전망 2023은 “지금까지 AI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지루하거나 위험한 업무를 줄여 일의 질이 나아진 경우도 있다고. 이 대목 읽고 어깨에 힘이 좀 풀렸다.

그런데 다른 쪽 데이터를 보면 마냥 안심하기도 어렵다. 스탠퍼드 연구진이 미국 급여처리 회사 ADP 데이터로 본 결과, AI 노출이 큰 직종에서 22~25세 초기 경력자 고용이 상대적으로 13%쯤 줄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고객 서비스가 특히 그랬고, 같은 직종이라도 경력 있는 숙련자 고용은 오히려 늘었다. 정리하면 초급직이 조용히 깎였다는 얘기다. 다만 이건 미국, 그것도 특정 시점 데이터라 그대로 우리한테 붙이긴 조심스럽다.

국내는 어떤가. KDI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청년·여성 쪽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났다. 결이 스탠퍼드랑 비슷하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니 “AI가 갑자기 어른 전문직을 쓸어간다”기보다, 이제 막 발을 들인 신입 자리부터 티 안 나게 줄어드는 그림에 가까웠다. 웹기획 쪽 신입 공고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AI 노출 직종에서 신입 고용이 먼저 줄었다

웹기획자인 내 업무를 쪼개 놓고 봤더니

여기까지 읽고 내 일에 직접 대봤다. 웹기획 업무를 통째로 “대체된다/안 된다”로 볼 게 아니라, 업무를 잘게 쪼개서 어느 조각이 AI로 넘어갔는지를 봐야 그림이 잡혔다.

넘어간 조각은 확실히 있다. 자료 조사하고 요약하는 일, 화면 정의서 초안 잡는 일, 회의록 받아치고 정리하는 일, 단순 데이터 취합. 이건 요즘 내가 실제로 AI한테 먼저 시켜 놓고 시작한다. 예전엔 화면 흐름부터 손으로 그렸는데, 지금은 프롬프트부터 만지게 된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

남은 조각은 오히려 값이 올랐다. 이해관계자들 사이를 조율하는 일, 뭐가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 사용자가 진짜 겪는 문제가 뭔지 정의하는 일, 그리고 AI가 뽑아준 초안이 맞는지 틀렸는지 검증하고 책임지고 결정하는 일. 이건 AI한테 넘기려다 몇 번 데였다. 그럴싸한 초안을 그대로 믿었다가 사실관계가 어긋나 손본 적이 있어서, 결국 마지막 검토는 내가 붙들고 있게 되더라.

이게 스탠퍼드 연구가 말한 대목이랑 맞물린다. 초급 근로자가 취약한 건 그들의 일이 정형화돼 있어 AI로 대체되기 쉬운 반면, 경력자의 암묵지가 완충 역할을 한다는 것. 결국 지식노동에서 사라지는 건 직업이 아니라 업무의 구성이었다. 자리 이름은 남고, 그 안에 뭘 담느냐가 바뀌는 셈이다.

AI를 쓰는 사람이 안 쓰는 사람을 대체한다

이쯤 오니 ‘대체냐 아니냐’라는 질문 자체가 좀 어긋나 있었다. MIT 슬론 연구는 AI가 대체(automation)보다 보완(augmentation)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같은 도구라도 조직이 ‘AI를 나 대신’으로 쓰느냐 ‘AI를 나와 함께’로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는 거다.

숫자로도 그런 신호가 보인다. PwC 2025 글로벌 AI 잡스 바로미터를 보면, 자동화되기 쉽다던 직군에서도 일자리 수는 오히려 늘었고, AI 스킬을 요구하는 일자리엔 평균 56%의 임금 프리미엄이 붙었다. IMF의 최신 스킬 보고서도 AI를 ‘개발’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냥 업무에 ‘쓰는’ 사용자 스킬만으로도 임금이 조금 더 붙는다고 짚었다. 개발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소리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안심하면서도 정신이 들었다. 웹기획자를 통째로 AI가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쓸 줄 아는 웹기획자”가 “AI를 안 쓰는 웹기획자”를 대체하는 쪽에 데이터가 훨씬 가깝다. 뒤늦게 공부하며 이것저것 써보는 지금 이 삽질이, 그러니까 헛일은 아니었던 거다.

물론 이 숫자들도 PwC 같은 컨설팅사 자료라 다소 낙관 쪽으로 기울어 있을 수 있다. OECD·스탠퍼드의 담담한 데이터랑 나란히 놓고 봐야 균형이 맞는다. 어느 한쪽만 붙잡으면 또 헤드라인에 속는다.

결국 저 99%가 무섭던 게 아니라, 그 옆의 단서를 안 읽던 내가 문제였다.

그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