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브라우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새 프로그램을 하나 더 깔아야 하는 건 줄 알았다. 크롬을 버리고, 북마크를 옮기고, 비밀번호를 다시 넣고. 웹기획 하던 시절 버릇대로 이사 갈 집 평면도부터 그리는 기분이었다.
쓰고 보니 좀 다르다. 갈아탈지 말지가 먼저가 아니었다. 이미 쓰던 크롬 안에 뭐가 들어와 있는지, 그리고 AI한테 내 로그인된 브라우저를 얼마나 맡길지가 먼저였다. 순서가 거꾸로 된 고민을 한 주 넘게 붙잡고 있었던 거다.
이미 크롬 오른쪽 위에 와 있었다
크롬 상단에 반짝이는 제미나이 버튼이 생긴 건 꽤 됐는데, 노관심으로 흐린 눈 하고 지나쳤다. 구글코리아 블로그를 찾아보니 한국 출시는 2026년 4월 20일이었다. 미국보다 7개월쯤 늦게 들어온 셈이다. 구글 계정으로 크롬에 로그인만 돼 있으면 무료고, 한국어도 된다.
길고 지루한 기사 하나를 열어둔 채 사이드패널에서 요약을 눌러봤다. 탭을 안 옮기고 그 자리에서 몇 줄로 줄어드는 게 은근히 편하다. 그동안 요약하겠다고 챗봇 창에 복붙하던 손이 좀 민망해졌다. (그러다 낭패 본 적도 있다..)
열어둔 탭 여러 개를 모아서 요금제나 상품을 견줘주는 기능, 지메일·캘린더랑 이어지는 기능까지 공식 안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페이지 요약이나 탭 몇 개 견주는 정도라면, 크롬을 버릴 이유가 애초에 없었던 거다.

대신 클릭해주는 건 아직 반쪽이었다
AI 브라우저 얘기에서 다들 눈이 반짝이는 건 사실 요약이 아니다. AI가 커서를 쥐고 스크롤하고, 폼에 입력하고, 장바구니까지 담아주는 에이전트 쪽이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서비스별 지원 범위를 하나씩 대조해봤는데, 여기서 국가 제한이 확 갈렸다.
2026년 10월 6일 기준 각 서비스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한 범위는 이 정도였다.
| 서비스 | 한국에서 지금 | 대신 클릭(에이전트) |
|---|---|---|
| 크롬 + 제미나이 | 무료, 한국어 | 미국 AI Pro·Ultra 구독자만 |
| 퍼플렉시티 코멧 | 무료 다운로드 | 무료로 가능 |
| 엣지 + 코파일럿 | 기본 기능 무료 | 미국 M365 Premium만 |
| 챗GPT 아틀라스 | 2026년 8월 9일 종료 | – |
크롬 AI 기능 안내 페이지에는 자동 탐색이 미국 구독자 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부 2차 자료엔 인도까지 넓어졌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한국은 빠져 있다.
결국 한국에서 공짜로 에이전트를 만져볼 수 있는 건 사실상 코멧 하나다. 2025년 10월부터 전 세계 무료로 풀렸고, 크로미움 기반이라 크롬 확장 프로그램도 그대로 쓸 수 있다. 다만 한국어로 국내 쇼핑몰이나 예약 사이트에서 얼마나 잘 움직이는지는 공식 자료에서 끝내 못 찾았다. 여기는 내가 아직 모르는 영역이다. 예전에 며칠 구글 대신 퍼플렉시티 검색만 써봤던 때는 검색 결과가 궁금했던 건데, 이번엔 결이 다르다. 검색창이 아니라 내 탭을 대신 만지는 녀석이니까.

코멧 설치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설치 파일까지 받아놓고 손이 멈췄다. 지금 내 크롬에는 은행, 메일, 블로그 관리자 화면이 전부 로그인된 채로 열려 있다. 에이전트는 내 로그인 상태 그대로 움직인다. 그 말이 갑자기 무겁게 들렸다.
찾아보니 이미 사고 사례가 있었다. 2025년 8월 브레이브 보안팀이, 레딧 글에 숨겨둔 지시문만으로 “이 페이지 요약”을 누른 사용자의 에이전트가 메일 인증 코드를 가져가게 만드는 걸 시연했다. 요약 버튼 하나 눌렀을 뿐인데.. 등이 서늘했다.
테크크런치 보도를 보면 OpenAI도 2025년 12월에 이런 프롬프트 인젝션은 완전히 해결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만드는 회사가 이렇게 말하면, 쓰는 쪽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가트너는 같은 달에 기업 보안 담당자들한테 AI 브라우저를 당분간 막으라고 권고했고. 회사에서 막으라는 걸 집에서 은행 탭 옆에 켜두려 했던 거다. 나원참.
하나 더 걸린 건 책임 문제다. 아마존과 퍼플렉시티 소송에서 2026년 8월 4일 미국 제9순회항소법원은, 에이전트로 사이트에 들어간 주체를 개발사가 아니라 그걸 쓴 사용자로 봤다. 미국 판결이라 그대로 옮겨 오긴 어렵지만, 감은 온다. 에이전트가 엉뚱한 걸 결제해도 그건 내 계정 일이 된다는 거다.
아틀라스가 열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챗GPT 아틀라스 얘기를 다시 찾다가 벙쪘다. 2025년 10월 21일 맥 전용으로 나왔던 그 브라우저가, 2026년 8월 9일에 공식 종료됐다. 윈도우 버전은 곧 나온다더니 끝내 안 나왔고, 지금은 챗GPT 데스크톱 앱과 크롬용 확장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출시 열 달 만이다. 여기에 북마크며 비밀번호를 몽땅 옮겨놓고 주 브라우저로 쓰던 사람은 꽤 정신없었겠다 싶었다. 종료 전에 북마크 내보내기 안내가 있었다지만, 그 한 달을 놓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거다.
AI 브라우저는 1년도 안 돼서 사라지기도 한다. 이걸 알고 나니까 갈아탈지 말지 고민 자체가 조금 가벼워졌다. 아예 갈아타지 않는 쪽도 선택지였던 거다.
AI 브라우저 쓰기 전에 내가 붙여둔 기준
모니터 옆 포스트잇에 적어둔 걸 그대로 옮긴다. 적다 보니 알았다. 내가 겁낸 건 AI 자체가 아니라, 로그인된 채 열려 있는 내 탭들이었다.
- 에이전트용 브라우저에는 은행, 주 메일을 로그인하지 않는다. 쓰더라도 별도 프로필로 나눈다.
- 처음엔 요약과 질문만. 결제, 전송, 가입처럼 실행이 걸리는 건 확인 창이 뜰 때 내 눈으로 본다.
- 회사 자료나 사내 시스템 탭이 열려 있을 땐 사이드패널 AI를 부르지 않는다.
- 브라우징 기록, 메모리 설정이 어디에 얼마나 남는지 먼저 열어본다.
- 주 브라우저로 옮기기 전에 북마크·비밀번호를 내보낼 길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세 번째는 챗봇에 회사 자료를 붙여넣다 손이 멈췄던 일이랑 같은 얘기다. 그땐 내가 복붙을 해야 정보가 넘어갔는데, 브라우저 사이드패널은 열린 탭을 그냥 보고 있다. 문이 하나 더 열린 셈이다.
그래서 지금 내 판단은 이렇다. 요약이랑 탭 견주기는 크롬에 들어온 제미나이로 충분하다. 이건 확실하다. 코멧은 언젠가 깔아볼 거다. 다만 은행도 메일도 없는 빈 프로필에서, 장난감처럼. 에이전트가 한국에서 제대로 돌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따져볼 생각이다. 지원 범위는 자주 바뀌니까, 그때도 공식 페이지부터 다시 열어봐야겠지만.

포스트잇 붙이고 나니 저녁 할 시간이다. 사이드패널 닫고, 냉장고에 뭐 남았는지부터 봐야겠다.